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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정보 인물모티브 황궁아파트 몰락 원인분석

by 배달꾸니 2023. 11. 28.

 

모든 것이 무너졌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정보

영화 콘크리트 유통피아! 약 189억 원의 제작비로 알려져 있다. 갑작스러운 대지진으로 서울은 폐허가 되어 버렸고 생존자들은 유일하게 멀쩡한 황궁아파트로 몰려들었고 입주민들은 외부인들과 싸우며 시작되는 재난 스릴러 영화다. 영화의 엔딩에서 90도로 넘어진 집 내부는 수직적인 황궁아파트와 달리 수평적 관계를 의미하기도 하고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감독 엄태화는 영화의 전반적인 색채에 대해서 영화의 전반부는 청색과 회색의 어두운 톤으로 가다가 점점 빨간색 톤으로 바뀌는데 이 변화에서 영화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날씨가 풀리고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실제로 영하의 날씨라서 입김이 나오는 전반과 달리 후반부에는 아파트로 물줄기가 생기는 등 기온이 올랐음을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아파트가 항구적인 식수원을 확보했음을 알려주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날씨가 영상의 날씨로 돌아왔음을 은연중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파트 밖으로 나간 사람들도 초반에 쫓겨난 사람들은 멀리 못 가서 동사한 반면 후반부에 나가는 인물들은 더 멀리까지 가서 정착하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따뜻한 느낌의 노란색으로 마무리했다. 황궁 아파트는 대표 한 명의 집권 아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분배받는 사회주의 유사 체제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 뉴욕 현대미술관은 유고슬라비아가 1948년부터 1984년까지의 공산 체제 시절 이상사회 건설을 꿈꾸며 콘크리트로 지었던 건축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 전시회 이름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해: 유고슬라비아의 건축 1948-1980>이었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사회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시스템이므로 마지막에 등장한 마을이 이상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물 모티브

영탁의 행적은 모세와 히브리인의 출애굽기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영탁의 본명은 모세범이다. 영탁은 평소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한강을 넘어가서 공격을 당했을 때 지팡이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도망쳐 나오는 과정에서 이를 별 수 없이 버리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권력 또한 지팡이와 같이 증발한다. 성경에서 모세의 지팡이는 그것을 들고 있는 동안은 전쟁을 이길 수 있지만 들지 못하고 내려놓으면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선택받았다고 말하는 영탁의 행동은 유대교의 선민사상을 연상시킨다. 영탁의 정책에 반발한 인물들의 집 문설주에 빨간색 페인트를 칠하는 부분도 성경의 레위기에서 따온 모티브로 보인다. 방범대 활동이 시작되고 한동안 아파트 밖에서 높게 솟아오르던 불기둥은 혹독한 광야에서 히브리인들을 보호하던 불기둥과 구름 기둥 중 불기둥을 연상시킨다. 영화 중반부에 흙벽에서 물이 터져 나와 주민들이 물을 담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출애굽기에서 물이 없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위를 지팡이로 쳐서 물줄기를 터트린 장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정찰대가 물이 사라진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장면은 모세가 이끄는 히브리인들이 기적을 통해 홍해와 요단강의 물을 가르고 마른 바닥을 밟고 건넜다는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영탁을 구약으로 명화를 신약으로도 볼 수 있다.

 

황궁아파트 몰락 원인분석

명화를 안 좋게 보는 관객들은 명화의 행동이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명화 자체가 아파트 생활방식을 개인적인 행동으로 반발하고 무너뜨리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화가 룰에 반발하여 음식을 나눠주느라 피해를 입었다고 해석이 가능한 사람은 명화 본인과 남편 민성뿐이며 아파트 전체로 보면 아파트에서 의료 기술을 통해 기여한 유일한 사람으로 보인다. 민성에게 자신의 배급만으로 살아가기에는 충분하다고 말하며 번데기를 배급받을 정도로 상위 계층에 해당함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지막에 김영탁을 모세범이라고 고발한 것도 다수결로 정해진 룰에 의거해 대표 자격이 없다고 제기한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체제가 목표로 하는 외부인 배척을 살펴볼 수 있다. 영화가 아파트 주민 그중에서도 방범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명확히 짚어주지는 않았으나 침입한 외부인들 중에는 쫓겨난 국회의원 보좌관 등 추방당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외부인을 거세게 내쫓으면서 성립된 체제 자체가 외부인의 방범대 습격을 불러왔고 결국 그들이 아파트로까지 이어 습격한 것이다. 세상이 달라졌음을 인지하면서도 대지진 이전의 시스템인 주택 소유 여부로 계층을 나누는 모순적 관점이 집단의 생존에 한계를 짓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대지진 이전의 사회적 질서를 지키고 보호하여 구성원들을 결속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정말 영탁이나 부녀회장이 생존주의적 전략을 펼치려 했다면 주민 중 노약자를 내보내지는 않더라도 외부인 중 생존에 도움이 될만한 기술을 지닌 사람 위주로 수용했어야 했겠지만 그저 주민 여부에 집착했다. 하다못해 뚜렷한 기술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 정치인이더라도 고학력자이며 사람과 조직을 다루는 데에 능숙할 것이므로 괜찮은 인력이 될 수 있음에도 거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했다. 하물며 거주민에게 호의적이고 아파트에 대해 잘 알던 경비원까지 외지인이라고 쫓아낸 것도 크나큰 무리수였다. 물론 외부인들을 무턱대고 수용했다면 내부의 자원고갈이나 치안 문제가 영화 초기에처럼 심해졌을 것이다. 일단 무정부 상태라 살인 약탈 등의 범죄들이 일상이 되었고 아파트 바깥이 지옥이라는 언급을 보면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집단도 있는 듯 하지만 그러나 외부인을 앞뒤 안 가리고 추방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다른 가능성들을 모두 없앤 것은 잘못이다. 적을 너무 많이 만든 책임이 있었다. 나중에 방범대 조장 임명 과정에서 자가와 대출 운운을 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점은 철저한 생존주의 아포칼립스물이 아니라 아파트로 대표되는 계급사회에 대한 우화와 풍자 의도가 매우 강하게 배어 있음을 드러낸다. 사람의 수를 조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그나마 입주민 여부로 구분하는 것은 확실한 기준하에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체제 자체의 내부 모순과 그로 인한 추방파 아파트 주민 간의 갈등도 주요 원인이다. 명화가 영탁을 고발하기 전에도 이미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고 집권세력이 갈라지고 대처할 병력도 남지 않았으므로 잘 풀려도 어쩌다 습격을 한 번 막아내고는 뒤이어 뚫리거나 자멸할 만한 상황이었다. 자체 생산하는 물자가 없고 수집 및 약탈에만 의존했다. 위험한 방범대로 차출 가능한 인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유지해야 할 시설과 인원은 너무 많다. 한강을 넘어서 백화점까지 걸어서 가고 수십 명이 먹을 식량을 옮겨야 하는데 체력적으로 성인 남성이라도 힘든 일이다. 거기다가 다른 피난민들과 만나서 충돌이 있을 수 있고 식량을 옮기고 지쳤을 때 기습을 당하면 몰살당하기 쉽다. 이렇게 한강 너머까지 약탈하러 갈 동안 물자를 자체 생산하지 못한 이유로는 황궁 아파트가 폐허 이전의 문명이었기에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폐허 이전의 물자를 얻고 이용하는 습성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자기들 말에 의하면 선택받은 주민이라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죽기 위해 선택받은 주민은이라는 역설이 성립하게 되며 기존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물론 이후에 황궁 아파트를 습격하여 물자를 얻어내는 사람들 또한 결국에는 죽기 위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수평으로 눕힌 아파트의 주민들은 폐허에서 계단 공공재 등의 새로운 물자들을 생산해 내는 데 성공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황궁아파트만이 서있어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면 행복할 거 같아 가려했지만 진정한 행복은 무너진 아파트에서 찾은 걸로 보아 감독이 아파트를 비판하는 게 느껴진다